인문.경영 커뮤니티 > 인문.경영 커뮤니티 > 독일통일은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의 결과
HOME | LOGIN | JOIN | SITE MAP


 
회원가입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작성일 : 12-05-15 23:36
독일통일은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의 결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26  
   1990년 10월 3일 이루어진 독일 통일은 1970년대 초반 재임한 빌리 브란트 수상의 업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브란트 수상은 수상에 선출되기 전까지 서베를린 시장을 엮임하였고, 바로 직전에는 외무부장관을 지냈다. 그는 서베를린 시장 재임 중에 직접 두번의 위기를 경험하는데 1958년 가을의 후루시초프의 베를린 통첩과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 설치이다.  그는 냉전시대 베를린이 최대의 패해지역이라는 것을 알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냉전에서 해방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았다.
   브란트 수상은 1961년부터 4번의 수상을 도전한 가운데 1969년 수상에 선출되었다. 그는 수상에 취임하자 마자  가장 측근인 에곤 바아(Egon Bahr)를 소련의 특사로 보내 소련과 외교관계 개선하기 위한 전권을 부여한다. 그의 노력의 결과 1970년 8월 12일 독일( 당시 서독: 정확한 표현은 독일연방공화국)은 소련과 모스크바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관계를 정상화하였다.  소련과 조약에서 소련을 공산주의 종주국으로 인정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동서경계선을 무력으로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약속을 받았다. 소련과 국교정상화에 만족하지 않고서 다시 폴란드와 같은해 12월 7일 바르샤바에서 양국간에 바르샤바조약을 체결하였다. 바르샤바조약에서 폴란드가 제2차세계대전 최대의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전쟁 후 포프츠담 협정에서 연합국이 독일의 의사와 상관없이 폴란드에 양도한 오더-나이쎄 강 동부영토를 독일이 영원히 포기한다고 조약에 명문화하였다. 이로써  폴란드는 독일이 과거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폴란드를  침입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독일(서독)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 독일제국주의 최대피해자인 폴란드와 관계를 정상화하였기에 동독과 회담을 시작하는데 장애요소들을 제거하였다. 동독과 정상회담은 수상 비서실장인 Egon Bahr가 전담하였다. 약 3년간에 회담기간을 거쳐 1972년 12얼 21일 동서독기본조약(Grundvertrag)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동서독간에 교류를 위한 기본 틀을 마련하였고, 계속되는 부가조약에 의해 동서독 교류를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 체계화되었다.
그 결과 서독 국민은 1년에 28일간 동독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가 있었고, 동독시민도 서독에 사는 친인척의 애경사날에는 서독을 방문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서독정부는 서독사람들이 동독을 방문하면 동독의 인프라를 이용한다는 명목으로 동독에 경제적인 지원을 무상으로 지원하였고, 또 동서독시민이 서로 편지를 하면 동독우체국시설과 직원들의 인건비를 계산해서 경제적인 지원을 하였다. 그리고 동독의 교도소에 수감중인 정치범들의 몸값을 동독정부에 지불하고 석방해서 서독으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양국국경선에서 생산되는 지하자원을 서독의 자본과 기술로 개발해서 동서독이 공동으로 분배하였다. 그리고 함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통하는 고속도로를 새로 건설하기로 했는데 모든 공사비는 서독정부가 지불하고 서독의 건설회사는 도로공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이유는 동독의 실업자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소련을 중심으로 폴란드, 동독, 나중에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불가리아 등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여 유럽중앙에 놓여 있는 독일은 사회주의 국가인 동유럽과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냉전의 피해에서 서서히 벗어나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브란트 수상시절에 체결한 동유럽과의 외교관계는 그의 후임자인 헬므트 슈미트 수상, 당이 다른 헬므트 콜 수상도 계속 계승발전시켜 동유럽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은 1989년 독일통일로 바로 연결되는데 1989년 동독의 젊은이들이 휴가를 이용해 동유럽에 있는 서독대사관으로 들어가 서독으로 이주를 요청한다. 제일 먼저 헝가리 주재 서독대사관에 들어간 동독인들의  서독이주가 성공리에 이루어졌다. 계속되는 동독탈출은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독일대사관으로 이어졌다. 
   또한 동독 내에서는민주화를 위한 데모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동독주변의 국가 중에서는 제일 먼저 폴란드가 민주정권이 수립되었다.  동독정부는 동유럽에 불기 시작한 개혁과 개방의 분위기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채 수뇌부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동독정부는 더 이상 정치체제를 수행할 능력이 없어 자구책 중에 하나로 동.서베를린 사이에 있는 베를린 장벽을 개방한다고 선언하였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동서독을 자류롭게 왕래하는 사이 동독정부는 더 이상 정권을 유지할 능력을 상실해 버렸고, 서독정부는 통일계획안을 작성하여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 후로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서독은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이룩하였다.   

 
 


Warning: Unknown(): write failed: Disk quota exceeded (122) in Unknown on line 0

Warning: Unknown(): Failed to write session data (files). Please verify that the current setting of session.save_path is correct (../data/session) in Unknown on line 0